본 글은 2020-1학기 포항공대 이충형 교수님의 ‘시공간과 물질의 철학’ 수업의 읽기자료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물리학도는 아니지만 수업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이렇게 문서형태로 정리해둡니다.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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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20-1학기 포항공대 이충형 교수님의 ‘시공간과 물질의 철학’ 수업의 읽기자료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물리학도는 아니지만 수업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이렇게 문서형태로 정리해둡니다.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주의!:
이번 글은 제가 교양 수업 발표를 위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배경지식이 다르고, 사람마다 어떤 주제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볼 때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ㅜㅠ

읽기자료:
The Puzzles, fro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asserman, Fall 2017 ed. link


metaphysics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을 의미한다.

‘형이상학’이란 “자연적인 것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 Q.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게 진짜인가?
  • Q.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존재론)
  • Q. ‘나’는 누구인가?
  • Q. ‘신’은 있는가?
  • Q. 사람의 ‘의지’는 자유로운가?
  • Q. ‘변화’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으려고 한다.

본 글이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전체를 관통하는 것을 꼽자면,

  • Q. ‘동일(Identity)’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 Q. ‘변화’란 무엇인가?

에 대한 주제를 4가지 역설과 함께 탐구해보고자 한다.


The Debtor’s Paradox1

이 역설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배경이 되는 짧은 주장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Everything is in Flux?

우리가 같은 강물을 두 번 만날 수는 없듯이, 세상은 흐름flux라고 주장한다.

B.C. 500년, 에피카르모스Epicharmus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에 동의하며, 이것을 우리 몸body에 적용한 다음의 희극를 제시한다.

희극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철학자와 제자의 눈앞에 강에 널린 자갈 더미가 있다.
철학자가 제자에게 묻는다. 이 자갈 더미가 보이는가?
제자는 대답한다. “예, 보입니다.”

철학자는 자갈 더미에서 자갈 하나를 빼고 다시 묻는다.
“이 자갈 더미는 이전의 것과 동일한가?”
제자는 대답한다. “아니요, 다릅니다.”

철학자는 자갈 더미에 자갈 하나를 추가하는데, 이전에 뺐던 것과는 다른 자갈을 놓는다.
“이 자갈 더미는 처음의 것과 동일한가?”
제자는 대답한다. “아니요, 다릅니다.”

철학자는 말한다.
“누구는 성장하고, 누구는 늙는다. 즉, 우리는 항상 변화하는 존재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절대 같지 않으며, 미래의 우리와도 절대 같지 않다.”
One man grows and another shrinks, and so we change all the time. Never we are the same as we were just before and never we’ll be the same again.


하루는 제자가 돈이 궁해서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러 간다.
고리대금업자는 그에게 ‘일년 후’에 돈을 갚으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준다.

일년이 지난 후, 제자는 고리대금업자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은 항상 변화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돈을 빌린 것은 과거의 나이고, 빌린 돈을 갚겠다고 약속한 것도 지금의 나와는 다른 과거의 나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당신에게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

고리대금업자는 화가 나서 그 제자를 두들겨 패고는 재판장에 넘겼다고 한다.

엉뚱함이 묻어나는 이 희극은 이렇게 끝이 난다.

과연 정말로 제자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갚을 의무가 없는 것일까?
현대에는 사람마다 주민등록증이 있어, 제자의 주민등록증을 통해 과거의 제자의 채무를 현재의 제자에게 지울 수 있다. 즉, 제자를 정의하는 것이 제자의 몸(body)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The Puzzle of Dion and Theon

어떤 두 물체에 대해 다음의 4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dion_and_theon_1
STDP, DTDP, DTSP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Same-time, Same-place인 STSP는 우리의 직관과 어긋나는 상황이다! “The puzzle of Dion and Theon”은 이 STSP에 대한 역설이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Dion이라는 남자가 있다. Dion을 정의하는 집합에 대해, Dion의 왼발을 제외한 proper part를 “Theon”이라고 정의하자. Define ‘Theon’ as a proper part of Dion
dion_and_theon_2
다음날 Dion이 왼발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하자. 그런데 Dion은 그의 proper part인 Theon과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저자 Wasserman는 Dion이 죽고, Theon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Dion & Theon 역설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존재한다!!
(여기서부터는 Wasserman의 주장이 아닌, 다른 참고자료의 내용입니다.)


  1. Both Dion and Theon exist.
  2. Neither Dion nor Theon exist.
  3. Dion exist but Theon does not.
  4. Theon exist but Dion does not.

주장1에 대한 반박

주장1: Both Dion and Theon exist.

첫날에 Dion과 Theon은 둘다 존재했다.
하지만, 수술 후에는 Dion과 Theon이 둘다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1) Dion과 Theon은 numerically distinct하다.
(2) Dion과 Theon은 동일 공간과 동일 시간을 동일한 집합으로 점유하고 있으므로 STSP 상황에 처해있다.

만약 수술 후에 Dion과 Theon이 둘이 ‘동일identical‘한 상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Indiscenibility of Identical을 위배한다!
왜냐하면, Dion은 과거에 두 발을 가졌지만, Theon은 항상 오른발만 가지고 있었다. Dion once had two feet, but Theon had not.

주장2는 기각

주장2: Neither Dion nor Theon exist.

Dion과 Theon이 둘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반직관적counter-intuitive하므로 기각한다.

주장3에 대한 근거

주장3: Dion exist but Theon does not.

Q. 왜 Dion이 살고, Theon은 그렇지 않는 것인가?
(1) The concept of persion is maximal: the proper parts of person are not themseelves persons.
(2) Therefore, ‘Theon’ before the amputation was not a person.
(3) Persons are essentially persons, and hence non-persons are essentially non-persons.
(4) Therefore, ‘Theon’ before the amputation was essentially a non-person.
사람은 amputation of left foot라는 변화에 대해 살아남는다. Dion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Dion은 살아남는다.
(5) ‘Theon’ could not have survived a change that would have made it, if it survived, a person.
(6) The amputation of Dion’s left foot is a change that would have made Theon, if it survived, a person.
(7) Therefore, ‘Theon’ did not survive from the amputation of Dion’s right foot, and so does not exist after the amputation.

주장4에 대한 근거

주장4: Theon exist but Dion does not.

주장4는 “Mereological essentialism부분론적 본질주의
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

“wholes have their parts essentially.”
IF an object were to lose or gain a part, it would cease to exist; it would no longer be the original object but a new and different one.”

So, then ‘Dion’ ceases to eist when he loses his left foot, but ‘Theon’ continues to exist.

저자 Wasserman가 부분론적 본질주의를 바탕으로 주장4의 결론을 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입장은 주장4에 가까운 것 같다.


The Ship of Theseus Puzzle

이 역설은 상당히 유명한 역설이다. 아무래도 테세우스Theseus라는 미궁에서 미노타우르스를 죽였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인물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세번째 역설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사물의 변화란 무엇이며, 무엇이 사물의 정체성을 지속시키는가?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다음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theseus_ship
▲ photo from youtube channel, Wireless Philosophy

아테네의 박물관에는 테세우스가 타고 왔다는 한척의 배가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해가 갈 수록 테세우스의 배의 널판지가 낡아서 매년 널판지를 하나씩 교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박물관 경비원이 테세우스의 배의 낡은 널판지를 몰래 모아서 매년 자기 집에서 테세우스의 배를 다시 재조립 했다고 한다. 그렇게 100년 정도가 지나니 원래 테세우스의 배의 모든 널판지를 교체하게 되어서 테세우스의 배는 박물관에 한 척, 경비원의 집에 한 척이 생기게 되었다.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 된다.

주장1: 배의 변화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박물관의 배가 테세우스의 배다.

주장2: 박물관의 배는 대체되었다. 낡은 널판지를 모아 복구한 배가 진짜 테세우스의 배다.

저자 Wasserman는 이것에 대해 “테세우스의 배는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처음에 같은 장소에 중첩되어 존재했던 두 테세우스의 배가, 널판지가 교체되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테세우스의 배가 중첩되어 있다는 말은 Same-time, Same-place(STSP)의 상황인데, 본인은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확신이 안 선다. (저자가 틀린 것인가?)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역설은 워낙 유명해서 자료도 충분했지만, 뭔가 새로운 이론과 관점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링크로만 남겨두겠다.

Puzzles of Material Constitution

The Puzzle of the Statue and the Clay

드디어 마지막 역설이다. 이 점토상과 점토에 대한 역설이 본 글의 전체 주제를 포괄할 정도로 중요한 역설이다.

statue_and_clay
어느 월요일, 조각가가 한 움큼의 ‘점토’를 샀다. 다음날인 화요일, 조각가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점토상’을 하나 만들었다.
지금 조각가 손 위에 있는 ‘점토상’과 ‘점토’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처음에 본인은 ‘아니 당연히 점토상이랑 점토는 다르지!!’라고 생각해서 이게 왜 역설인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런데 잘 생각을 해보니 이 역설에서 전제로 하는 통념은 “‘점토상’과 ‘점토’는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점토상은 형태가 잡힌 점토이기 때문에 여전히 점토라는 것이다.

즉, “the clay constitutes the staue“인데, 이 ‘constitution‘의 대상이 되는 물질 사이의 관계가 이 역설의 논제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봤듯이, 서로 다른 물체는 같은 장소를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 따라서 constitution은 곧 identity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설은 이것을 부정하며 “‘점토상’과 ‘점토’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근거1) ‘점토상’과 ‘점토’는 시간적으로 다르다. differ in their temporal property
(근거2) ‘점토상’과 ‘점토’는 그것을 지속시키는 조건이 다르다. differ in their persistence conditions (= the conditions under which they would and would not continue to exist)
(근거3) ‘점토상’과 ‘점토’는 종류가 다르다. differ in their kind

※ 위의 속성들을 통틀어 non-categorical property라고 한다. non-categorical properties, where these include all of the various ways that a thing was, will, would, could, and must be

Leibniz’s Law: Identity of Indiscernibles 식별불가능자 동일성 원리

이 “‘점토상’과 ‘점토’는 다르다”는 주장은 Leibniz’s Law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점토상’과 ‘점토’ 사이에 단 하나라도 다르다면, 그 둘은 다르다.

그리고 어떤 두 객체가 동일한지는 Identity of Indiscernibles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객체 $X$가 가지는 모든 성질을 객체 $Y$가 가짐과 동시에, 객체 $Y$가 객체 $X$의 모든 성질을 가질 때, $X = Y$이다.

이것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forall x\forall y\left[ \forall F \left( F\left( x \right) \leftrightarrow F\left( y \right) \right) \rightarrow x=y \right]$

참고로 이 명제의 항진명제Tautology

객체 $X$는 자기 자신과 항상 동일하다.
$\forall x, x=x$

Idenetity of Indiscernibles에 대한 간략한 설명입니다. 일부 설명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Idenetity of Indiscernibles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link

그래서 논리의 흐름을 정리해보면,
(1) ‘점토상’은 월요일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화요일에 존재했다.)
(2) ‘점토’는 월요일에 존재했다. (단, ‘점토’는 화요일에도 역시 존재한다.)
(3) 만약 (1), (2)가 참이라면, ‘점토상’과 ‘점토’는 존재한 시기가 다르므로 Identity of Indiscernibles에 의해 ‘점토상’과 ‘점토’는 동일하지 않다.
(4) 따라서 ‘점토상’과 ‘점토’는 동일하지 않다.

자! 이제 우리는 왜 ‘점토상’과 ‘점토’가 다른지를 이해했다. 하지만, 만약 ‘점토상’과 ‘점토’가 다르다면 우리는 spatially coincident objects의 문제3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에 문제에 저자 Wasserman는 5가지의 서로다른 대답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대답1) (4)의 결론을 인정한다.
the constitution view & the temporal parts theory

(대답2) (1)을 부정한다. ‘점토상’은 월요일부터 존재했다.
the eliminativist view (제거적 유물론자)

(대답3) (2)를 부정한다. ‘점토’가 ‘점토상’의 형태가 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
the eliminativist view & the dominant kinds view

(대답4) (3)을 부정한다. 표준 형태의 Leibniz’s Law를 거부하는 것
the relative identity theory

(대답5) 사실은 이게 다 말verbal에 담긴 의미가 서로에게 잘못 전달되어 발생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것도 거짓이 아니다.
the deflationist view

the eliminativist viewthe deflationist view에 대해서는 맨 뒤에 간단한 요약을 기재하였습니다.

beyond ‘material constitution’

우리는 지금까지 ‘material constitution’에 대한 puzzle들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개체entity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event, properties, 그리고 group에 대해서 말입니다.

예를 들어 event에 대해서는
Q. What is the relation between the attack and the kick?
A. the ‘kick’ constitutes an ‘attack’ ⇒ event constitution

맺음말

metaphysics_overview

제목은 형이상학Metaphysics이었지만, 결국 본 글에서 다루는 주제는 Material Constitution이었다. 교양 수업이기도 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Introduction 수준의 발표를 준비했기 때문에 읽기자료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과학 철학, 물리 철학이라는 분야가 많이 생소하지만,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다.


보충 자료

Eliminative materialism (or eliminativism) is the radical claim that our ordinary, common-sense understanding of the mind is deeply wrong and that some or all of the mental states posited by common-sense do not actually exist and have no role to play in a mature science of the mind.

[Referenc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sophy link

According to the deflationism, to assert that a statement is true is just to assert the statement itself. For example, to say that ‘snow is white’ is true, or that it is true that snow is white, is equivalent to saying simply that snow is white, and this, according to the deflationism, is all that can be said significantly about the truth of ‘snow is white’.

[Referenc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sophy link


Reference

아래는 읽기자료 외에 추가로 참고한 자료입니다.

  1. The Debtor’s Paradox
  2. The Puzzle of Dion and Theon
  3. The ship of Theseue Puzzle
  4. The puzzle of the Statue and the Clay

  1. 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빚”이라고도 한다. 

  2. 하지만, 본인도 이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언급만 하고 넘어가겠다. 

  3. Same-time, Same-place(STSP)의 상황으로, 같은 공간에 동시에 두 물체가 존재하는 상황이다.